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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왜국)은 태생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땅에 위치한 나라.jpg
2023-09-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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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br>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의 시와 문을 구하여 얻은 자는 귀천과 현우를 묻지 아니하고 우러러보기를 신명같이 하고, 보배로 여기기를 주옥처럼 하지 않음이 없다. 비록 가마를 메고 말을 모는 천한 사람들이라도조선 사람의 해서나 초서를 두어 글자만 얻으면 모두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감사의 성의를 표시하며, 소위 문사라 하는 자는 천릿길(천리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고 와서 역이나 관에서 기다려서 하룻밤 자는 동안에 혹은 종이 수백 폭을 소비하고 시를 구하다가 얻지 못하는 자는 비록 반 줄의 필담이라도 보배로 여겨 감사해하기를 마지 아니한다. 대개 그들이 정화로운 땅에 생장하였으므로 본래 문자를 귀중히 여길 줄 알기는 하나 중국과는 너무 멀어서 평생에 의관의 성한 의식을 모르고, 평소에 조선을 높이 사모하는 이유로 그 대관의 귀인은 우리의 글을 얻어서 자랑거리로 삼고, 서생은 명예를 얻는 길로 삼고 낮고 천한 자는 구경거리로 삼아서 우리가 글을 써준 뒤에는 반드시 도장을 찍어 달라고 청하여, 진적인 것을 증명하므로 매양 이름난 도회지나 큰 고을을 지날 때에는 그들을 응접하기에 겨를이 없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min-width: 0px; max-width: 100%;">-신유한의 해유록(1719년경).<br>일본국(왜국)이 태생적으로 발전하기가 어려운 땅에 위치한 나라라는 기록입니다. 일본인 곧 왜인들은 문자(글자)를 귀중히 여기긴 하나, 중국과는 너무 멀어서 평생에 성한 의식을 모르는 나라라고 언급이 되어있지요.<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min-width: 0px; max-width: 100%;">"그것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만 지금 (귀국[조선국]의) 여러 종자들이 우리나라(일본국[왜국]) 사람들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왜인(倭人)이라고 칭하던데, 또한 평소에 바라던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귀국이 왜라는 칭호를 가진 지가 이미 오래인데 군이 무슨 유감입니까?" 하니, 우삼동(아메노모리 호슈)이 말하기를, "당사(唐史)에 이미 이르기를, 왜가 국호를 고쳐서 일본(日本)이라 하였다. 하였으니, 이 뒤에는 원컨대 하인들에게 신칙하여서 우리를 일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내가 또 묻기를, "귀국 사람이 우리를 당인(唐人. 당나라 사람)이라 부르고, 또 우리나라 사람의 필첩에 쓰기를 당인의필첩(筆帖)이라 하는 것은 또한 무슨 뜻입니까?" 하니,우삼동이 말하기를, "국가의 명령으로는 객인이라 칭하고 혹은 조선인이라 칭하도록 하였으나 민속이 옛적부터 귀국(조선국)의 문물이 중화(中華)와 같다고 했기 때문에 (조선인을) 당인이라고 칭한 것이니, 이는 (조선국을)사모(思慕. 우러러 받들고 깊이 따르다.)하는 것입니다."하였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min-width: 0px; max-width: 100%;">-신유한의 해유록(1719년경).<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min-width: 0px; max-width: 100%;">일본국(왜국)에서도 예로부터 조선국 후기 시대때에 이르기까지도 조선국의 문물의 질적 수준이 중화(중국)과 동일하여 이를 사모한다는 의미로 조선국을 두고 당나라 라고 불러왔을 정도이지요. 실제로, 일본국에서 조선국 후기에 이르기까지도 당인신사, 당인의 필첩, 당인옥 문집, 당인두부, 당인정, 당인 가마터, 당인춤, 당인 나오기 등등 조선국을 두고 당나라로 칭한 표현들이 매우 많죠. 반면에, 유럽문명권, 유구국(류큐국, 현 오키나와), 동남아시아~남태평양권을 두고서 남만, 훗카이도~쿠릴열도의 아이누족은 하이 이렇게 오랑캐 라는멸칭으로 써온 것에 비교하면 확실히 대조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br>장기진(長崎鎭)에 머무른 지 3개월이 되었으므로 그곳 사람들과 친해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중에는 때로 왕래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일본 풍속에 남녀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매우 흠모하여 평범한 뱃사람이라도 왜인들이 다투어 초대하고, 그 집에 이르면 술과 음식을 권하여 다정하고 성의가 있어서 중국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모두 대답하기를 “조선은 부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그 나라가 우리나라를 흠모함이 예부터 이와 같았다고 한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min-width: 0px; max-width: 100%;">평소에는 모두 꿇어앉았는데 남녀노소가 모두 그러하였다. 비록 밥하는 계집종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꿇어앉아 불을 지폈다. 그러나 남녀 구별 없이 본국인 타국인 할 것 없이 함께 섞여 앉아도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었으니, 그들이 서로 화간(和奸. 성관계)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간통하고자 하였는데, 하천(下賤)의 여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에 와서 남녀의 성기 등을 말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농담하는 것이 극도로 심하였다. 들으니, ‘왜녀(倭女)가 우리나라 사람과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나라에서 지극히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왜녀들이 반드시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자 한다. 그 사람들은 이 때문에 혹시라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정을 통하면 그 여자가 스스로 관부에 가서 말한다. 관부는 국왕에게 보고하고 출산할 달수를 계산하여 아이를 낳으면 관에서 돈을 준다.’ 고 하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돌아올 때 부산진에 도착하자 관리가 “이번에 표류인 중에서 일본에 들어가 간통한 자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으로부터 ‘어떤 사람이 어떤 여자와 정을 통하였는데 그 여자가 관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도착했다. 이것이 만약 위의 감영에 보고되면 즉시 이물통간죄異物通奸罪로 다스려질 것이니 만 번 죽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을 어찌 차마 죽일 수 있겠는가. 아래서부터 미봉彌綘하여 그 말을 없애 버리겠다.”라고 하였다. 그 여자가 스스로 관에 보고한 것이 과연 거짓이 아닐 것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min-width: 0px; max-width: 100%;">❖ 왜인은 우리나라를 매우 흠모하였기 때문에 제주 사람이 혹시 표류해 오면 그 털모자(氊笠)와 엉성하게 만든 사발을 모두 귀중한 물건으로 보관해 두었다. 작년에 정의 현감(旌義縣監)이 체귀(遞歸)하다가 표류하여 왔을 때 이곳에 도착하여 일곱 달 동안 조선관에 머물렀는데 그가 쓴 붓글씨를 가지고 왜인들이 모두 족자(簇子)를 만들고 비단으로 장식하였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min-width: 0px; max-width: 100%;">대마도(대마주, 쓰시마)에 도착했는데 물길 480리였다. 대마도 풍속은 지극히 교묘하게 속여서 일본과 달랐다. 표류한 사람의 옷과 음식은 본래 일본이 공급해 준 것인데 이것을 속여서 탈취하였으니 장기(長崎) 사람들이 대마도 사람들을 도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대개 이러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학일행(譯學一行)이 4월 그믐날 이후 대마도에 정박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본 것은 만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이니 그 기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마도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어가 능하였다. 우리를 보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도 조선인이다.”라고 하였다. 평소의 언어는 조선어와 일본어였으며, 한번도 일본을 본국이라 말한 적이 없었다. 대체로 일본과 다르며 일본의 순신純臣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도착한 후에 동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이며 그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마도 사람들이 와서 ‘나도 조선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min-width: 0px; max-width: 100%;">-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 1818년.).<br>조선국은 후기때도 동양문명권에서 소중화로 공인받다.jpg (etoland.co.kr)<br><br>심지어, 한 술 더 떠서, 일본인(왜인)들은 중국인들보다 조선인들을 조선국은 부처님의 나라라는 이유로 더 우대할 정도였으며, 일본국에서 조선인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일본인 여성 곧 왜녀들이 반드시 조선인들과 동침하여서 조선인의 아이를 임신하려고 했는데, 왜녀가 조선인 아이를 임신한 것을 관부에 알리면, 그 관부가 중앙정부인 에도 막부에 알리고, 에도 막부가 출산할 날짜를 계산해 관부를 통해 알려줄 정도였다고 하지요. 이는 조선국이 중국(명나라), 여진족의 중국 정복왕조(청나라)와 더불어 동양문명권의 1등 내지 특등 문명국(선진국)으로 번영, 융성해왔기에 가능한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우니만큼, 유익한 참조가 되었으면 합니다. ㅎ<br> <img src="/data/daumeditor10/230829/thumbnail3/16104116932467490.jpg"><img src="/data/daumeditor10/230829/1610411693246749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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